탈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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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사람의 랍비

내가 <탈무드>의 신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면접 시험을 보았다. 그때 '왜 여기에 입학하려 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이 학교가 좋아서'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면접을 맡은 시험관은 '만약 공부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차라리 도서관에 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학교는 공부하는 곳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사람한테 '그렇다면 구태여 학교에 입학할 필요가 없지 않는가'라고 물었다. 시험관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학교는 존경받는 인물을 앞에 모시기 위해서 가는 곳이지,살아 있는 교과서를 통해 모든 것을 배워야 한다네.학생이란 훌륭한 랍비나 교사의 언행을 지켜봄으로써 스스로 배워가는 것이지."

나는 여기에서 <탈무드>에 등장하는 세 사람의 랍비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랍비 힐레루

랍비 힐레루는 약 2000여년 전 바빌로니아에서 태어나 20세가 되던해 이스라엘로 가 두 사람의 랍비로부터 지도를 받았다.당시의 이스라엘은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어 유태인들의 생활이란 고통스럽기 그지 없었다. 그래서 힐레루는 우선 생활하기 위해 돈벌이에 나섰으나,하루에 동전 한닢 벌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그는 운 좋게 번 동전 한닢의 절반은 생활비로 쓰고, 나머지는 수업료에 충당하였다.

어떤 때는 그나마 일거리가 없어 단 한닢의 동전도 벌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그래도 힐레루는 학교에서 듣는 강의는 빼지 않고 들어야 했다. 그는 생각 끝에 남몰래 학교 지붕으로 올라가 굴뚝에다 귀를 대고 밤늦도록 강의를 들었다. 그러던 중 피곤에 지쳐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추위가 극성스러운 한 겨울이라 때마침 눈이 내려 잠에 빠진 그의 몸을 덮어 버렸다.

다음날 아침 다시 공부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다른 날과는 달리 교실안이 어두웠다. 모두들 천정을 쳐다 보았는데,지붕에 난 창을 누군가가 가리고 있는 것이었다. 서둘러 힐레루를 끌어내려 간호하자 그는 다시 깨어났다. 그때부터 힐레루는 수업료를 면제받고 공부하게 되었고,또 그것이 계기가 되어 유태인 학교에서 수업료가 없어졌다.

힐레루에 관한 언행은 가장 많은 칭송 속에 전해지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말씀에도 적지 않게 인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힐레루는 천재였고, 거기에다 중후하고 예의바른 인물이었다.

어느날 유태인이 아닌 사람이 찾아와 힐레루에게 강요하듯 말했다. [내가 한쪽 다리로 서 있는 동안에 유태 민족이 배우는 학문을 모두 말해 보시오]
그러자 힐레루는 태연스럽게 대답하였다. [당신 자신이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강요하지 마시오]

짖궂은 또다른 무리들이 힐레루를 화나게 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놓고 내기를 걸었다. 마침 안식일을 앞두고 힐레루가 목욕탕에 들어가 몸을 청결히 하고 있을 때 한 남자가 찾아왔다. 힐레루는 젖은 몸을 대충 닦고는 그를 만났다. 찾아온 그 남자는 엉뚱한 것을 물어왔다.

[랍비님 인간의 머리는 왜 동그랍게 생겼습니까?]
힐레루는 성의껏 대답해 주고, 다시 목욕탕에 들어왔는데 그 남자가 또 문을 두드렸다. 힐레루가 다시 나오자 "왜 흑인은 피부가 검습니까?" 하고 또 엉뚱한 질문을 하는 것이었다.

힐레루는 그러나 화를 내지 않고 차근차근 그 이유를 말해 주고는 목욕탕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또 노크 소리가 들렸다. 이렇게 하기를 다섯번이나 계속되었다. 결국 그 남자는 '랍비님 같은 사람은 이 세상에 없어야 좋았을 것이오. 나는 랍비님 때문에 내기에 실패해 돈을 잃었소?' 하고 속을 털어 놓았다.

힐레루는 '내가 인내심을 잃어 버리는 것보다는 당신이 돈을 손해보는 것이 더 낫지요.' 라고 대답하였다.

어느날 힐레루가 급하게 걸어가고 있을 때 학생들이 달려와 '선생님,무슨 급한 일이라도 생겼습니까?' 라고 물었다. 그때 힐레루는 '나는 지금 착한 일을 하기 위해 바쁘게 가고 있단다'하고 대답하였다. 학생들은 이를 궁금히 생각해 힐레루를 따라가 보니, 그는 대중 목욕탕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학생들은 목욕탕에 들어가 몸을 닦는 선생에게 '몸을 닦는 일도 선행 입니까'하고 물었다.

'자기 자신을 깨끗이 하는 일은 아주 값진 선행의 하나이다. 로마 사람들을 보아라. 그들은 거리에 있는 수많은 동상들을 깨끗이 닦아내고 있다. 그러나 사람이란 동상을 닦는 것보다는 자기 자신을 닦아 깨끗이 하는 것이 선행이지.' 이처럼 힐레루는 음미하면 할 수록 맛이 새로운 훌륭한 말을 많이 남겼다. 그 가운데 몇 개 간추려 보았다.

* 당신이 지식을 늘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당신의 지식을 줄여가고 있는 결과가 된다.

* 자기의 지위를 다른 사람들 앞에서 과시하는 사람을 이미 스스로의 인격에 상처를 입고 있다.

* 상대편의 경우에 서보지 않고는 남을 판단하지 말라.

*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부끄러워 하지 말라.

* 인내심이 부족한 사람은 스승의 자격이 없다.

* 만약 당신 주변에 뛰어난 인물이 없다면, 당신 스스로가 특출한 인물이 되어야 한다.

* 스스로 자신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누가 자기를 생각해 주겠는가?

* 지금 당장 그것을 서둘러 하지 않으면, 언제 할 수 있는 기회가 있겠는가?

* 인생 최대의 목표는 평화를 사랑하고 평화를 추구해 그것을 가져오는 것이다.

* 자기 자신의 것만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조차 될 자격이 없다.

랍비 요한나 벤 자카이

랍비 요한나 벤 자카이는 유태 민족이 역사상 최대의 정신적 위기에 처했던 시기에 가장 크게 활약했던 인물 중의 한 사람이다. 기원후 70년부터 포악한 로마인들이 유태의 성전을 가리지 않고 파괴시키고 유태족을 멸족시키려고 기도 했을 때,벤 자카이는 비둘기파였다. 그래서 반대파인 매파에서는 벤 자카이의 행동을 항상 감시하는 형편이었다.

벤 자카이는 그때 유태 민족이 멸망하지 않고 영원히 살아남는 길을 꼴똘히 생각한 끝에 마침내 로마의 유력한 장군과 협상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그 당시 유태인들은 예루살렘성 안에 모두 감금당한 상태였던 탓으로 바깥 출입조차 어려웠다. 그러나 벤 자카이는 환자를 가장하여 탈출하는데 성공하였다. 벤자카이는 널리 알려진 랍비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문안차 몰려 들었다.

며칠 뒤 벤 자카이는 살아날 가망이 없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으며, 그러나 끝내 죽었다는 소문이 퍼졌다. 제자들은 그를 관 속에 넣은 뒤 성밖의 묘지에 매장할 수 있도록 허가를 요청했다. 성 안에는 묘지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반대파에서는 벤 자카이의 죽음을 믿을 수 없다며 칼로 찔러 죽었나를 확인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유태인들은 '그런 짓은 죽은 사람을 모독하는 행위'라고 크게 반발하였다. 유태인들은 시체를 눈으로 보는 것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눈으로 보고 확인할 수가 없었다. 드디어 제자들은 관을 들고 로마군의 전선을 향해 갔다. 그러나 전선에 당도하자 로마 병사들도 관을 칼로 찔러 보아 확인하겠다는 것이었다.

제자들은 '만일 로마 황제가 죽었다면, 당신들은 그때도 칼로 관을 찌를 것인가?' 하고 항의하였다. 또한 무장도 하지 않았음을 강조하여 마침내 로마 병사들의 전선을 통과할 수 있었다. 그 뒤 벤 자카이는 관 속에서 나와 로마 사령관에게 면담을 요청하였다. 면담이 이루어져 사령관 앞에 앉게 되자 그는 사령관의 눈을 잠시 바라보다가 '나는 장군에게 로마 황제에게 표하는 경의를 보낸다'고 말하였다.

그러자 장군은 황제 폐하를 모독했다고 언성을 높였다. 벤 자카이는 당황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아닙니다. 장군은 반드시 로마의 황제가 됩니다]
확신에 찬 랍비의 말에 장군은 얼른 입을 막았다. [그런 얘기는 그만 둡시다. 나를 찾아온 목적이나 말해 보시오]
벤 자카이는 '오직 한가지 소원이 있다'고 했다. 여러분도 그 소원이 무엇인지 짐작해 보십시오.

벤 자카이의 소원이란 이런 것이었다.
[방 한칸의 교실이라도 좋으니 조그만 학교 하나만 지어 주십시오.]

그리고 그것만은 없애지 않았으면 고맙겠습니다.
벤 자카이는 필경 예루살렘이 로마에 점령되어 곧 파괴되고 말 것이라는 것을 예견하고 있었다. 하지만 학교만 유지하고 있으면 유태 민족의 전통은 이어져 갈 것이라고 그는 믿었다. 장군은 랍비의 청이 별로 대단치 않아 좋다고 약속했다.

그후 얼마 지나지 않아 로마 황제가 죽고, 그 장군이 황제의 자리에 앉았다. 그는 '하나의 작은 학교만은 절대로 없애지 말라'고 명을 내렸다. 바로 그때 그 학교에 있던 학자들이 유태 민족의 지식과 전통,신앙 등 유태의 얼을 지킨 것이다. 전쟁이 끝난 뒤의 유태인들의 생활 규범도 모두 그 학교에서 앞장서 선도해 나갔다.

벤 자카이는 '항상 선한 마음을 지니는 것이 최대의 재산'이라고 역설하였다. 유태인들의 제단에는 돌만 사용하고 철을 비롯한 금속은 쓰지 않는다. 금속 종류는 무기를 만드는 재료가 되기 때문이다. 이들이 생각하는 제단은 신과 인간에게 평화를 선사하는 것이며,또한 신과 인간이 가깝도록 연결해 주는 하나의 상징이라 생각하였다.

말이나 감각이 없는 돌까지도 신과 인간 사이를 맺어주는 것으로 여겼다. '우리들은 인간이므로 부부 사이에,또 나라와 나라 사이에 평화로움을 선사할 수가 있다'라는 명언도 벤 자카이의 말이었다.

랍비 아키바

랍비 아키바는 <탈무드>에 등장하는 랍비들 중에서도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며,유태 민족의 영웅이다. 한때 그는 큰 부자집에서 양치기의 일을 한 때가 있었다. 그때 그 부자집 딸과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고, 그 집 부모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했기 때문에 집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아키바는 남의 집에서 일할만큼 생활이 어려워 공부를 못했으므로 글을 읽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의 부인은 '당신이 공부하여 지식을 갖추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하곤 하였다.

그래서 아키바는 나이가 들어 아이들 속에 섞여 공부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13년이 지나 그가 공부를 마치고 귀가했을 때는 이미 당대의 이름난 학자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후 그는 최초의 <탈무드>를 편집한 인물이 되었으며 ,또 의학과 천문학에 조예가 깊었고, 외국어까지 능통해 유태 민족의 사절로 로마를 방문하기도 하였다. 기원후 132년에 로마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유태인들이 난을 일으켰을 때 그는 유태 민족의 정신적 지도자였다. 이 반란이 가까스로 진정되자.로마인들은 학문하는 유태인은 누구라도 사형에 처할 수 있다고 공포하게 되었다.

로마이들은, 유태인은 그들이 배우고 있는 전통적인 책으로 인해 참다운 유태인이 된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때 아키바는 여우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어느날 여우가 냇가를 거닐고 있는데, 물 속에서 물고기들이 바쁘게 헤엄쳐 다니고 있는게 보였다. 그래서 여우는 '왜 그렇게 바쁘게 다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물고기는 '우리를 낚으러 달려드는 그물이 무서워서 그런다'고 대답하였다. 여우는 친절한 척 '그럼 땅으로 나오렴.내가 너희들을 지켜줄 테니까' 하고 말하였다.

물고기는 여우의 말에 '여우들은 꽤냐 영리하다고 들었는데.이제 보니 그렇지도 않군 우리도 살고 있는 물 속에서도 이렇게 무서워 떨고 있는데, 땅 위로 올라가 무슨 변을 당할려고 올라가는가?'라고 말하며 콧방귀를 뀌었다.

이를테면, 유태인에게는 학문은 물과 물고기의 관계와 같으므로 물고기가 물을 떠나 잠시도 살 수 없듯이 유태인은 어떻게 해서든지 반드시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던 것이다.

그 뒤 아키바는 로마인들에게 붙잡혀 로마로 끌려간 뒤 처형당하게 되었다. 그때 로마 사람들은 아키바를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는 것은 형벌로는 너무 가볍다 하여 숯불에 달군 인두고 지져 죽이기로 하였다. 아키바를 처형하는 현장에는 유태인의 지도자라는 것 때문에 로마 병사의 사령관이 나와 있었다.

마침 아침 기도가 시작되어야 하는 시간이었다. 이때 불에 빨갛게 달군 인두가 아키바의 등에 아키바는 아침 기도를 시작하였다. 이 모습을 보고 놀란 사령관은 아키바에게 말했다.

[당신은 이런 참혹한 고통 속에서도 기도를 할 수 있는가?]
아키바의 대답은 담담했다.

[지금과 같이 이렇게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신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나 자신으로부터 진실로 신을 사랑하는 나를 발견하는 기쁨뿐이다.]
아키바가 조용히 말을 마치자 그의 찬연했던 생명의 등불이 서서히 꺼져갔던 것이다.